
2월 26일 러시아 정교회 성 시노드 회의에서 동남아시아 총대주교대리구 소속 하에 대한교구를 편성하는 결정이 가결되었다. 그 관할주교로는 테오판 김 키질 및 투바 대주교가 서임되었다. 우리는 테오판 대주교에게 한국 내 정교의 역사와 현황, 또한 새로 편성된 교구의 사목구들의 상태에 대하여 진술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Q. 테오판 주교님, 성 시노드가 한국에 교구 설립을 결정하였는데, 이는 어떤 연유가 기인한 것이라고 보십니까?
A. 성 시노드는 오늘날 러시아 정교회가 동남 아시아에서 자신의 사목 및 선교 사업을 재개할 소명을 받았음을 공정하게 결정하였는데, 그 지역에서 이 사업은 수 세기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정교의 출현은 19~20세기 한러관계의 발전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조선인들은 제정 러시아의 극동지역으로 대량 이주하였습니다. 1856년 캄차카, 쿠릴 및 알류샨 대주교 성 인노켄티오스 베니아미노프가 대규모의 조선인 이주민들이 유입된 유즈노 우수리스키 변강에 정교 전도자들을 파송하기 시작하여 조선인들 가운데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인들은 전체 마을 단위로 정교 신앙을 수용하였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훗날 조선으로 귀환하였고, 1897년 설립되어 1900년 2월 한반도 내 사역을 시작한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의 첫 양떼를 구성하였습니다. 단, 러시아와 한국의 역사에서 비극적인 사건들이 한국선교회의 정상 기능 지속을 방해하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지적하는 것은 러시아에서 교회를 상대로 적대적인 정책을 펼친 소비에트 국가의 성립을 가져온 1917년 혁명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조선의 남북분단 그리고 뒤따른 1950~1953년 한국전쟁입니다.
1949년 남한 당국은 선교회장 폴리카르프 프리마크 대수도사제를 한국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정치적 이유들로 강제로 선교회의 활동이 정지되고 그 재산이 압류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에서 선교 및 사목 사업에 장애가 되었던 요인들이 이제 사라졌고, 오늘날에는 오래 전 시작된 사업의 지속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인과 러시아 정교회의 법적 책임 영역에 속하는 타 국가 국민 등 러시아 정교회 신도들 중 상당수가 아시아 국가들에 상시거주나 임시출장의 목적으로 출입국하는 새로운 시대의 여건들은 우리 교회 지도부가 자신의 교회와의 영적 연계를 끊기를 바라지 않는 이 사람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기울이도록 자극합니다. 당장 대한민국에만 해도 등록된 러시아인의 수가 약 2만 명에 이르는데, 2018년에는 30만여 명의 러시아인 관광객들이 남한을 방문하였습니다. 이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교회생활에 적극 참여하고 현행 러시아 전통과 교회력에 맞춰 거행되는 예배에 참석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총대주교대리구를 창설한 것 역시 우리 교회의 역사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였던 교회조직체를 부흥시킨 것입니다. 1945년 12월 중국과 조선의 사목구들은 동아시아 관구역으로 통합되었고, 이는 1946년 총대주교 알렉시 1세의 교령으로 하얼빈에 본부를 둔 동아시아 총대주교대리구로 전환되었습니다. 총대주교대리구는 1954년 시대 여건상 러시아 정교회 성 시노드의 결정으로 폐지되었지만, 오늘날 변화한 조건들을 헤아려 재건된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러시아 정교회 조직체들의 부흥이 보다 이른 시기에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1990년 러시아와 남한의 외교관계가 수립되었을 때 러시아 정교회는 조국에서 수십 년 간 이어진 무신론자들의 억압 후 맞이한 쉽지 않은 부흥기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방문한 노어권 신도들은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의 사목구들에서 영적 원조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에서 교회는 그 자녀들의 모든 생활 여건에서 그들과 동행하려 노력하며 그 선교사역을 적극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노어권 주민들의 한국 유입이 수십, 수백 배로 증가함에 따라, 한국에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사목구들을 개설할 필요성이 무르익었음이 명백해졌습니다.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와의 성사교류 중단은 우리 잘못이나 우리 바람에 따라 일어난 것이 아니었지만, 아무튼 이로 인하여 우리 신도들은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사목구들의 개설은 전적으로 절박한 요구에 대한 응답입니다.
Q. 주교님, 우리 교회 시노드에 의하여 가결된 결정 직후 서울에서 봉직하는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의 암브로시오스 관구장주교가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한국에서의 행위들을 비판하는 인터뷰가 공개되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논평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A. 저는 암브로시오스 관구장주교와 한국에서 그 분의 *오모포리온 아래 노고를 다하는 모든 성직자들께 존경과 사랑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봉직한 십 년의 세월은 개인적으로 제게 있어서 뜻 깊은 경험이 되었고, 또 저는 그 모든 분들과의 따뜻한 관계가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암브로시오스 주교님의 서명이 들어가 인터넷 매체들에 공개되어 러시아 정교회의 명의 앞으로 발표된 불공정한 힐난의 글들을 마음에 고통을 느끼며 읽고 있습니다. 제게는 이러한 글들이 독자들의 의식과 심정을 진정시키는 데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 주교용 영대. 본문에서는 해당 주교의 관할권을 의미 (역자 주)
저는 또 바라건대, 지금 우리 교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논조나 타 지역교회의 주교들에 대한 모욕은 우리 중 누구에게도 용납될 수 없음을 암브로시오스 주교님께 형제로서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전혀 건설적인 대화에 기여하지 않습니다.
저는 누가 한국에서 선교를 맡는 것에 더 많은 권리가 있는 지를 규명하는 것보다 상호 간의 사랑과 친교를 유지하며 평화롭고 평안히 노력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기는데, 이는 타교파들과 세속화된 세상 앞에 교회의 일치에 대한 더욱 실질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일할 터전은 넓고, 또 모두에게 충분하답니다.
Q. 암브로시오스 관구장주교가 자신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어떤 “사전계획”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을까요?
A. 재외 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교회생활 정비 사업과 조국에서 멀리 떠나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조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실로 많은 우리 동포들에게 있어서 정교 사목구들은 신도들이 예배를 위하여 모이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동포들 간에 친교를 맺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민족 전통과 축제들을 유지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즉 많은 나라들에서 성당들이야말로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는 데에 혜택을 주는 장소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와의 성사교류의 불가는 새로운 사목구들의 편성을 어느 정도 자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차치하고도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사목구들은 그 필요성이 무르익은 만큼 이르든 늦든 대한민국에 새로이 출현할 터였습니다.
러시아 교회와 콘스탄티누폴리스 교회 간 법적 친교의 부재는 모든 정교인에게 고통스러운 상황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상황이 해결되고 신도들이 그 법적 소속을 막론하고 모든 정교 성당에서 성사에 참여하게 되기를 계속해서 희망합니다. 매 성찬예배에서 우리는 교회일치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Q. 주교님께서 보시기에 한국에서의 선교 사업이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 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의 재산은 보존되어 있습니까? 이미 갖춰진 것은 무엇이고,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A.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에게는 토지도 건물도 없습니다. 과거 러시아 제국 정부의 대금과 러시아에서 모금된 헌금으로 구입되어 서울 중심가 정동에 소재하였던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의 옛 부지는 이제 우리에게 속하지 않습니다. 1921년 11월 4일 티혼 총대주교 성하의 결정으로 조선의 선교회는 도쿄 대주교 세르기 티호미로프에게 소속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부지와 건물들은 일본정교회의 재단에 신탁등기되었습니다. 그 후 나중에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에 합류한 현지 정교 공동체는 재판을 통하여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의 전 재산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였고, 그 후 이를 매각하고 서울 마포에 새 부지를 구입하여 그곳에 성 니콜라오스 성당을 건립하였습니다.
현재 신설된 부활사목구는 용산구의 크지 않은 장소를 임대하여 예배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에는 1백 명 이상이 예배에 출석하여 그 곳은 이미 비좁았습니다. 서울 사목구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미국의 국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예배가 교회 슬라브어로 거행됨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들도 이에 출석합니다. 한국인 정교도들의 일부는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의 우크라이나에서의 행위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그 외 다른 이유들로 인하여 우리 서울 사목구에 출석합니다.
부산시 거주 노어권 신도들도 적잖이 있는데, 그들을 대상으로 부활절을 비롯하여 몇 차례 예배가 행해졌습니다. 서울과 부산 외에 다른 도시들에도 촘촘히 노어권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앞으로 모든 곳에서 완전한 교회생활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Q. 신설된 부활사목구에서 누가 예배를 거행합니까?
A. 제일 처음에는 서울에 사목구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동남 아시아 총대주교대리구의 사목구들로부터 사제들이 단기로 출장을 왔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상주 성직자들을 선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해외 러시아 정교회의 직분자인 바울로 강영광 신부가 서울에서 봉직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의 남한 출신 신부인 바울로 최지윤 수도사제는 현재 상트 페테르부르크 신학원에서 학업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학업을 마친 뒤 귀향하여 우리를 돕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Q. 북한 평양에 성삼위 성당이 있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해주십시오.
A.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초 정교성당의 건축에 대한 결정은 2002년 하바롭스크 성 인노켄티오스 성당을 방문하였던 김정일에 의하여 가결되었습니다. 곧 평양에 성당이 건립되었고, 2006년 7월 *’생명을 베푸시는 성삼위 성당’으로 명명된 성당의 공동체는 러시아 정교회의 품 안에 받아들여졌습니다. 2006년 8월 키릴 스몰렌스크 및 칼리닌그라드 관구장주교(현재 모스크바 및 전 루시 총대주교)가 성당 축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성당의 성직자들은 러시아의 신학교육기관들에 유학하였고 러시아 주교들에 의하여 서품되었습니다. 현재 주로 평양에 주재하는 외교공관들의 직원들이 성당을 방문합니다.
* 북한 현지에서는 정백사원이라고도 불림 (역자 주)
Q. 주교님, 우리 독자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A. 저는 여러분의 보도를 통하여 한국에 거주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모든 신실한 자녀들에게 그들의 교회와 그 *수좌주교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또 오늘날 어려운 시기를 감당해내고 있는 키예프 관구장주교 오누프리 복하와 합법 우크라이나 정교회 전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할 것을 호소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사목구들이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지금 새 공동체들의 창설에 여러분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모두께 하느님의 축복을 청합니다!
* 러시아 정교회 전체의 수좌주교(head) 키릴 모스크바 및 전 루시 총대주교 성하를 지칭 (역자 주)
포털 pravoslavie.ru 기자와 테오판 김 대한대주교의 대담
2019년 5월 23일
우리말 번역: 바울로 최지윤 수도사제
교정 및 편집: A.A. 구리예바.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 동양학부 한국문학 선임교사
대한정교회 공식보도